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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마켓피플#5] 장재민 (프리마켓 참가자 2004~ )

[프리마켓피플#5] 장재민 (프리마켓 참가자 2004~ )

프리마켓 피플 ‘장재민’

2004년부터 프리마켓에 참가하여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이태원에 ‘노동연구소’라는 스튜디오를 오픈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10초 완성 10원 초상화로 10년 넘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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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재민’이라고 합니다.

10초 완성 10원 초상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2004년에 프리마켓에 첫 참여 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태원에서 노동연구소라는 이름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FM.프리마켓과의 첫 인연은?

Jang. 2003년에 대학을 갈 시기쯤에 프리마켓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나도 프리마켓에 참여하는 사람들처럼 내 브랜드의 물건들로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소통하고, 나의 물건에 대해 설명하고 팔면서,

나의 작품을 인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바로 준비를 해서 2004년 여름에 노트, 티셔츠 등 아트상품으로 참여했었죠.

 

 

FM.처음부터 10초 완성 10원 초상화로 참여하신건 아니군요. 10초 완성 10원 초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무엇인가요?

Jang. 처음 참여했을 때 만든 아트상품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막연하거나 모호하게 느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프리마켓에 나와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았고, 당연히 판매로도 이루어지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대로 진행을 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점점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같이 프리마켓 참여했던 사람들과 장난삼아 시작했던 초상화를 사람들에게 선보였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나는 초상화라고해서 자세히 그려주거나 잘 그려주고 싶지 않았고, 재미있게 접근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가장 싼 가격에, 가장 빠르게, 가장 대충 그리는 방식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제 초상화를 보고 사람들도 재미있다고 생각해 주었고 나도 재미있게 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꾸준히 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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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작업실 이름이 ‘노동연구소’예요.

사회적으로 ‘노동’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잖아요. 오히려 사람들이 좀 낯설어하거나 어려워하는 말에 가깝고요.

그런데 노동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노동연구소’라는 이름을 사용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Jang. 원래 저의 작업 방식이 머리를 써서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레이아웃을 쌓아올리는 방식이 예요.

초상화만 해도 꾸준히 많은 사람들을 그려오는 작업이고, 저의 작업 방식이 기교 같은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한다, 열심히 한다, 많이 한다’가 기본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노가다’라는 표현을 썼었죠.

처음에 스튜디오를 오픈했을 때도 그래서 ‘Hardwork lab’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었어요. 그러다 2~3달 쓰다 보니 정이 가질 않아서 한글로 바꿨어요.

‘노가다연구소’보단 ‘노동연구소’가 더 좋아서 ‘노동 연구소’로 사용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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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라는 이름을 택하면서 이름에 걸 맞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바라보는 노동이라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는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FM. 스튜디오가 이태원에 있는데, 이태원이라는 동네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있나요?

Jang.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을 아니고, 이태원은 처음에 작업실을 내면서 들어가게 되었죠.

작업실을 처음 구할 때에는 마석에 살고 있었는데, 작업실 왔다 갔다 하기 힘들어 결국 집도 이태원에 얻어 지내고 있어요.

 

FM. 요즘 이태원이 참 핫 해요. 처음 들어갈 때랑 지금은 참 많이 바뀌지 않았나요?

JANG. 그 전에는 이태원이 메인 스트릿 이라고 볼 수 있는 곳 말고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아니었죠. 하지만 지금처럼 ‘핫’해지기까지는 시간 문제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이태원에 작업실을 낸 것도, 내가 거기 있어서 혹은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녀서 이슈가 되었다기 보다는,

원래 그렇게 되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내가 먼저 들어와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저는 생각하면 바로 실천에 옮기는 타입 이라 크게 앞뒤를 재지 않고 들어갔더니,

남들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들어가는 시간만큼 좀 더 앞서서 들어가거나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FM. 계단장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홍대에 오기 힘들어서 만들었다는 인터뷰를 봤었는데.

JANG. 진담 섞인 농담이죠.(웃음) 작업실에서 멀리 안 나가고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작업실 있는 동네가 슬럼화가 많이 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재개발지구라는 것이 참 무섭거든요. 사람들의 모든 의욕을 다 꺾어 놓죠. 조금만 노력하면 고쳐질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아무도 하지 않게 되는 동네가 되어 버려요.

동네에 쓰레기가 있고 날 파리가 꼬이고, 사람들에게 우범지역 아니냐는 애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어요. 골목길 사이로 한강이 보이고, 남산이 보이고,

건물들도 시간의 흔적을 가지고 있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동네인데 재개발이라는 것 때문에 다 망가트려버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있는 이곳을 좀 더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을 했어요.

외부사람들이 이 동네를 봤을 때 어떻게 해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끔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보니, 마침 동네에 같은 시기에 들어왔던 청년장사꾼과 그 외 여러 팀과 같이 계단장을 열게 되었죠.

계단장 덕분인지 많은 사람들이 동네를 긍정적으로 보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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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장은 아쉽게도 작년까지 진행 하고 올해는 휴장을 하였습니다.)

 

FM. 프리마켓 활동이 재민씨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 있을까요?

JANG. 음….엄청 복합적인 것 인데…단순하게 애기하면 아주 많은 영향을 끼쳤죠.

            처음에는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 물건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당연히 사람들도 나처럼 예뻐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시야가 엄청 좁았었죠. 그러다 프리마켓을 만나고 그 안에서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면서 시야가 많이 넓어 졌어요.

내가 생각한 것들이 전부는 아니다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부를 더 많이 해야 겠다 라고 생각 했어요.

예전에는 무슨 일을 하면 충동적이고 즉흥적 이였다면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게 되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방어적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전 좋게 변한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웃음)

 

 

FM. 프리마켓이 예전과 변화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JANG. 잘 모르겠어요.

똑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변한 게 나인지, 프리마켓인지 확신이 안서네요.

 

 

FM. 10초 완성 10원 초상화를 10년 넘게 계속 해오고 있으신데요,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JANG. 지금까지 58,000명 정도 그린 것으로 기억해요.

5~6년차까지는 내가 이걸 꾸준히 해서 나의 작업을 증명 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죠.

지금은 증명 받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 혼자만의 만족만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요.

저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의 만족도, 클라이언트의 만족도, 나의 만족도를 다 일치 시켜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고 생각 하는 것이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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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0원 10초 초상화 10년 기념 책자 –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99명의 그림 주인을 모았고 이 그림들로 10주년 전시와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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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그래도 이렇게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요. 재민씨가 생각하는 프리마켓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JANG. 프리마켓도 제가 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프리마켓으로 돈을 번 다기 보단 일상예술창작센터의 트레이드 마크이니까.

프리마켓을 안하게 됐을 때 상실감은 무시 못 할 것 같아요.

그러니 주폭과 싸우고, 주위환경들과 싸우면서 계속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요.

프리마켓은 일상예술창작센터의 첫째 아들 같은 존재 이지 않겠냐…

 

FM. 첫째아들…비유가 너무 적절해서 순간 소름이 돋았네요.

프리마켓과 추억이 있는 물건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소개를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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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 돈 깡통 이예요. 몇 번 바뀌긴 했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은 2009년부터 7년째 사용해오고 있죠. 돈 깡통은 추억이라기 보단 저에겐 상징적인 물건 이예요.

저는 이 돈 깡통이 사람들에게는 선입견을 깨트릴 수 있는 수단이라 생각해요. 보통 돈이라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고이고이 모셔두잖아요.

그런데 나는 사람들이 돈을 돈 깡통에 던지고, 나도 금액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지깡통처럼 보일 거예요.

돈이라는 것으로 작품의 가치를 한정 시켰을 때는 작품의 레벨을 낮추는 아이템이지만, 내가 하는 활동에 있어서는 나의 작품의 아이덴티티를 높여주는 장치이죠.

돈 깡통은 내 작품을 돈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상징적인 장치이면서, 사람들과 소통의 상징이기도해서 저에게는 정말 중요한 물건 중 하나입니다.

 

FM. 프리마켓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JANG. 계속 해나가길 바랍니다.

프리마켓이 건설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길 바라요.

그 자리를 지키고, 포기하지 말고, 잘 유지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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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 마지막으로 15년 된 프리마켓에게 축하 메시지를

JANG. 15년 뒤에 또 봅시다.

 

 

*프리마켓피플은 프리마켓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하는 특별 프로그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