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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10월 프리마켓 사람들 작가 길성신 (신스)

(기획 인터뷰)10월 프리마켓 사람들 작가 길성신 (신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때론 슬럼프에 빠지고,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닌가 회의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예술가, 작가의 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요.

2008년부터 프리마켓에 참여하다 잠시 다른 진로를 모색 후에 다시 프리마켓으로 돌아온 길성신(신스) 작가님의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시죠.


○ 작업을 1년 반 동안 쉬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2008년도 3월 즈음부터 (프리마켓)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때 나오고 여태까지 하면서 5~6년 하면서 회의감이 들었어요.

프리마켓은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하지만 거기에서 상처 받는 말들도 되게 많이 듣게 되거든요.

(예전에는) 제가 아직 덜 여물었으니까 내가 받아들이고 고쳐야 될게 있다고 여겨서 참았는데,

매년 듣다 보면 그것도 되게 스트레스가 되더라구요.

작업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고, 이것을(되살림예술) 계속 끌고 나가고 싶은데,

사실 월급 받는 것처럼 수입이 되는 분야가 아니라서 같이 갈 수 있는 직업을 찾느라 쉬게 되었어요.

마음도 재정비하고, 작업 적인 면에서도 조금 더 생각해보고 그러다가 준비 없이 또 나왔죠.(웃음)

이럴 줄 알았어. 이럴거면 왜 1년 반을 쉬었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 시민들이나 시장 분위기가 (쉬는 것에) 영향을 끼쳤나요?

초반에는 소풍같은 분위기가 컸었어요.

우리(작가들)는 피크닉 나온다는 분위기가 컸고, 시장 꾸려나가시는 매니저나 다른 윗분들도 같이 으쌰으쌰하고 낭만이 있었어요.

근데 이게 돈이 걸려 있잖아요.

돈이 걸려있다보니 제가 참여했을 때도 이미 상업적으로 되가기 시작한 때라고 들었는데,

제가 참여했을 때(2008년)는 그 때도 낭만이 있었는데,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점 기업화가 되기 시작한거죠.

제가 설자리일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거죠.

저는 그렇게 기업화가 되고 싶지는 않고, 그렇게 만들어낼 수도 없고, 제 능력상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지치는 게 많았죠.

내가 좋아해서 좋아하는 걸 하려고 나왔는데, 나한테 맞지 않는 걸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 나오게 되었죠).

(시간이 지나며) 다른 마켓을 보게 되잖아요. 거리를 지나가거나 친구가 다른 마켓에 나가서 놀러 가게되든, 가서 보면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보다 더 심한 거에요.

○ 더 상업화가 되었다는 말씀이시죠?

– 네. 그래서 진짜 놀랐어요. ‘내가 시골이나 산골에서 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직은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이 예술성을 지키고자 하는 게 있구나.’라고 생각해서 다시 나오게 되었죠.

마음 좀 가라 앉히고.(웃음)

 

○ 그래서 작품이 더 눈에 띄었던 거 같아요.  보기에 상업적이지 않아서.

–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그걸 내 방식으로 견뎌나가는 것도 내가 성장하는 단계이겠구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렇게 실망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생각을 바꿨죠. 돌고 도는 거 같더라구요.

잘 다듬어진게 보기가 좋을 수는 있어요. 근데 오래 보기에는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 않을까.

다시 손으로 만드는 티가 확나는 작품을 다시 좋아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 작가님의 작품을 어떤 작업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양철사자라던지

– 저 같은 작업 방식을 정한 말이 있잖아요. ‘새활용’이라고.

저는 그 전에 ‘되살림 예술’이라고 계속 얘기를 하고 다녔어요.

제가 알고 있기로 제가 처음인데. 요즘에는 지역에서 단체하시는 분들이 조금 써주셔서.

제가 그걸(되살림)을 채택해보려고 했던게 있었는데, 아직은 안타깝게도 안됐어요.

 

제가 하는 건 ‘되살림’, ‘업싸이클’이라고 부르는 분야구요.

예전에는 되게 많이 재활용품을 이용해서 생활소품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재활용품을 최대한 50% 이상 넣으려고 하고요.

제가 만드는 작업 소품으로 인해서 생활이 더 에코스러운, 친환경적이 되는 생활로 바뀌기를 바랬어요.

예를 들면 텀블러 주머니 경우에는 텀블러를 좀 더 위생적이고 쉽게 사용할 수 있게 금 만드는 것이기도 하구요.

양철사자는 되살림을 알려주는 캐릭터로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좀 친근해지면 소재가 익숙해지면 사람들이 더 친환경이나 새활용이나 되살림예술 같은 거를 익숙해지고

저랑 시민들이랑 친해지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해서 양철사자로 재밌는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있었죠.

요즘에는 소재에 대해서 친근성을 유도해보려고 작업 하는 게 있어요.

저는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편이라 남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아이디어를 선보이려고 하는게 많아요.

 

○ 양철사자 다리는 철심이 들어가 있는 건가요?

 – 네 와이어가 들어가 있구요. 움직임까지 생각해서 좀 다양한 포즈로 서 있게 하고 싶은 거에요.

몸톰이 통통하다보니 팔 다리는 날씬하게 만들었어요.

양철사자를 구입하시는 분들이 꾸밀 때 포즈도 다양하게 만들게금 생각하고 만들어서 서 있을 수 있어요.

○ 캐리어에 앉아 있는 양철사자는 어떤 캔으로 만드신 건가요?

 – 캔이 의외로 다양하게 나와서 큰 인형으로 나오는 애들은 맥주캔이구요.

일반 가방에 달려 있는 애들은 음료수 캔이에요.

더 작은 사자는 캔 바닥으로 하는 게 포인트인데

작은 캔이 없어서 못 쓰는 단추나 쇠단추 같은 거에다 캔 조작을 덧대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캐리어에 앉아 있던 것이 쿠키 통에 있던 뚜껑이에요 .

제 정체성을 잘 표현 할 수 있는 건 양철사자구요.

대중에게 접근성이 좋은 건 실용적인 텀블러 주머니에요.

 

○ 텀블러 천은 못 쓰게 된 옷을 받아서 만드신 건가요?

 – 옷을 받아서 하기도 하구요. 이런 옷들과 섞어서 쓰려고 조각천을 구매하기도 해요.

옷으로만 하다보니까 아직 친숙하지 않아서 너무 톤 다운이 된다고 할까요.

한국 사람들이 입는 옷이 무채색이 되게 많아요.

저는 밝은 색을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좀 섞기 시작했죠.

○ 2008년에 처음 했을 때랑, 2018년에 프리마켓에 오랜만에 나왔을 때, 달라진 점이 느껴지셨나요?

 – 확실히 깨끗해진 건 있어요. 전 너무 좋다고 생각을 했는데,

구조가 너무 많이 바뀌면서 애매해진 느낌이 참여하면서 들기 시작하더라구요.

작년 재작년에는 놀러는 왔었어요. 깨끗해서 좋기는 했는데 화단이 없어지니까 아직은 좋은 지 모르겠고, 두고 봐야할 거 같아요.

화단이 사람들이 너무 막 써서 그렇지 있을 때는 초록초록한 나무와 풀들이 있어서 좋았거든요.

근데 (화단이) 없어지니까 프리마켓 구성도 되게 많이 달라졌잖아요.

화단이 줄다보니 나무가 줄어서 그늘도 많이 없어졌어요. 너무 밀어버리기 식으로 공원이 바뀌어서 아쉽긴 해요.

예전에 있던 구조를 살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무가 많으면 진딧물이 있어서 진딧물의 진액 때문에 작품이 훼손되는 게 있어서 속 상하기는 한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진딧물 때문에 민감하신 분들도 많아요. 근데 그늘이 되게 좋은 부분이에요. 뙤약볕 밑에 있으면 죽을 거 같잖아요.

 

○ 작업할 때 의미 있었던 순간이나 작품을 만들고, 작품을 팔 때 내가 이 작업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신가요?

 – 매해마다 내가 이거를 고생스럽게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고, 연말에는 다른 걸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러다가 생각을 고쳐먹는 계기는 마켓에서 만나는 분들 때문이에요.

굉장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좋아해주시기는 한데 표현을 해주시는 분들은 정말 소수에요.

간혹 다시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구요. 기억에 남는 분은 홍콩에서 오셨는데,

“작년에 네 사자를 샀어.” 라고 말 하며 좋아하시는 분들도 고마웠고.

또 다른 외국인은 “너 이 작업 잘 하고 있는거야! 아주 좋다!” 라고 말하며 가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런 분들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가장 뿌듯하고 좋으신 거군요.

 – 어쨋든 제가 작업에 의미를 담으려고 해서요. ‘예쁘다.’ ‘멋지다.’ 도 충분히 좋죠.

‘아이디어 좋다.’도 많이 듣기는 하는데,

‘너 잘 하고 있어.’라는 말이 제일 와닿는 거 같아요.

 올해 초에 제가 개인적으로 명함을 드린 분에게 연락이 와서 만난적이 있어요.

‘좋은데 왜 계속 안 하냐’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어서 울컥 하기도 했고,

올해 다시 프리마켓에 나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 그런 응원들이 작가들에게 필요한 거 같네요. 프리마켓에 활동가들이 오면 그런 말 많이 하거든요.

(작가의 작품이) 좋으면 좋다고 작가님에게 크게 말씀드리라고 얘기하거든요.

– 저는 칭찬이 고파요(웃음)

 (방문객들의) 표현이 제가 처음 프리마켓에 참여 했을 때보다 많아졌는데, 영혼 없는 표현이 많아진 느낌이 있어요.

진짜 좋아하시는 분들은 티가 나요. 얼굴의 표정에서부터 행동, 몸짓에서부터 티나 나니까

(때론) 기계적인 표현도 중요하죠.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에요.

다른 면으로, 시민들이 작가에게 접근하기 어렵게 보이는 이유 중에 하나는

A라는 상품을 기획하고 방법을 고민하고 최종적으로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을 해서 나왔는데

그거에 대해서 반응이 ‘이거 어떻게 했니?’ 이말을 제일 많이 들어서 그런 거 때문에 경계심이 많아 졌어요.

그런 분들이 은근히 많아요. 말을 안 하는 분들은 사진으로 찍어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이런 점 때문에 사람에게 실망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래서 그렇지 다가와 주시면 대부분 좋아요.

저희(작가들)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웃음)

 

○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를 하면 편한 거 같아요. 불편한 질문이나 어려운 질문을 받기도 하시나요?

 – 표현 하시는 게 좋고, 마음 속으로 간직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겠지만,

표현의 주가 되는 건 ‘너 이거 어떻게 했니?’, ‘너 이거 뭘로 했니?’, ‘재료가 뭐니?’ 이런 걸 물어보고 싶어서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런 말을 더 많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작가들)가 경계하는 게 많아졌어요.

어딜가나 어쩔 수 없는 거 같긴 해요. 단순 호기심일 수도 있고.

여기(되살림 예술)는 아이디어 싸움이다 보니까. 저도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되게 예민하구나.

 

○ 그런 말들에 노출되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거 같긴해요.

 – 저작권이 법적으로 보호가 확실히 되면 우리(작가)들이 그렇게 예민해지지는 않을 거에요.

‘그래 해봐! 나는 법이 지켜줄테니까.’ 그렇게 여길 텐데.

그게 과도기 단계이다 보니 내거를 내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훨씬 강하게 드는 거죠.

작품 카피 때문에 (프리마켓) 운영진이 캠페인을 벌인 적도 있긴 해요.

너무 감사했죠. 근데 그런 캠페인이 한시적이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긴 해요.

저는 사진은 편하게 찍으시라고 하긴 하는데. 걱정이 되기도 해요.

저는 어쨌든 소재가 다 보여요. 이것이 득이고 실일 수도 있는데.

예민하게 생각할래야 소재가 딱 보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 주중에는 작업을 집에서 하시는 건가요?

 – 작업실은 예전에 정리를 했구요. 작업실을 운영하려면 운영비가 들잖아요.

그거를 마련하고 계속 알바를 하게 되더라구요. 그럴 바엔 집에서 작업을 하자 생각했어요.

평일에는 작업을 하거나 요즘에는 작업을 바꾸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서 책을 읽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품에 대한)생각이 많은 시기이긴 해요.

 

○ 2008년에서 2016년도 까지 프리마켓에서 활동을 하는 동안 작업에서 프리마켓이 어떤 역할을 했다고 여기시나요?

– 저는 고등학교 때 프리마켓을 와 봤거든요. 고등학교 때 책을 보고 알았어요.

‘놀이터 옆 작업실’이란 책이 있어요.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이랑 홍대앞 희망시장 초창기에 참여했던 분들이 쓰신 책인데

그걸 보고 프리마켓에 참가하게 되었죠.

저한테는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게 2007년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때는 내 보일 수 있는 공간이 블로그 밖에 없었어요.

만들고 사진 찍고 올리고 이게 끝이 었죠. 인터넷이라는 게 속도가 되게 빠르잖아요.

블로그는 길어야 1분만 소비가 되고 마는 거니까.

마켓은 어찌되었건 1시부터 6시까지는 계속 보여줄 수 있고 매주 보여줄 수 있고,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적인 피드백을 바로바로 받을 수 있으니까

예쁘다거나 이게 좀 아쉽다거나 이래보면 어떻겠냐거나 얘기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그런 점이 되게 좋았어요.

전시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게 소소하게 그걸로 인해서 마켓에 참여할 초반에는 보시고서는 전시 의뢰도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같이 일 해보고자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굉장히 행복한 때였죠.

 

○ 그 때는 다른 마켓에 참여해보신 적 없으셨죠? 다른 마켓에 가셨다면 느낀 점이 있으신가요?

– 평일날 나가 본 적이 있긴 해요. 주말에만 하다보니까 생활비가 부정확하게 벌리는 게 있어서

평일날 나가본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실망을 하는게 있었죠.

어쨌든 우리(작가들)가 조립이라고 이야기하는 동대문에 부자재 ABCD 엮어서 나오는 분들도 있고,

제가 있기에는 제자리가 아닌 마켓들이 있었어요.

동대문 같은 곳에서 띄어온 부자재들로 손맛나게 만드는 것이 되게 많아졌어요.

신기해요. 내가 이 작업을 안해도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게 끔 잘 만들어내니까 참 할말이 없더라구요.

가보면 깜짝깜짝 놀라게 되요.

프리마켓 초반에는 마켓에 참여했던 분들 것을 카피해서 동대문에서 파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원작자가 죽어나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주변에도 잘 되던 분들이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안락하게 생활하는 분들도 보게 되거든요.

이제는 거꾸로 우리가 참고할 만한게 많아졌어요. 이런 걸 보면 만감이 교차해요.

그리고 다이소도. 우리(작가들)의 굉장한 적.

우리가 조금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할 때쯤에 시장주의적으로 잘 캐치하고 기업이 끼어들기 시작하니까

우리들은 빛을 보려고 하다가 꼬꾸라지는 경우가 훨씬 많은 거죠.

시장이 곳곳에 많잖아요. 지금은 거품인 거 같긴 한데, 저는 스포트라이트를 제대로 받아봤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근데 지금은 더 어렵게 되었는데 그것에 비추어볼 때 예전이 내 인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때구나(생각해요).(웃음)

 

 

○  젊은 세대가 돈이 없어서 그런 거 같아요. 실패할까봐 제일 무난한 걸 고르는 거 같아요.

스타벅스 기프티콘.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려고 하니까

선물할 때 실용적인 걸 선물하자 이렇게…(생각하는 거 같아요.)

핸드메이드를 좋아하고 권유하는데, 저나 제 주변이나 그것을 소비할 만한 여력이 안되는 거에요.

작가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말 ‘비싸다’는 말, 그말 진짜 안 하고 싶거든요.

근데 그말이 목까지 차오를 때 비참하더라구요.

좋은 물건을 소비하지 못하고, 

사고 싶지만 돈은 없고 살 수 있는 건 한정 되어 있는 거 현장에서 운영하면서도 힘든 점인 거 같아요.

– 인식전환을 위해서 마켓이 캠페인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마켓이 홍보될 때,

마켓이 미디어에 비춰질 때, 제가 보기에 한가지 아슬아슬 하다고 생각했던게

계속 예술작품을 싸게 살 수 있는 시장으로 미디어에서 얘기를 한 게 있었어요.

그림을 사는 것이 우리나라는 구매율이 활발하지 않으니까

근데 일반 마트에서 뭘 사던 분들이 프리마켓에 오면 여기는 엄청 비싼 거에요

그냥 예술시장으로 홍보를 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많이 해요.

볼 때마다 그것을 너무 강조를 하니까 그래서 비싸다는 말이 나온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TV프로그램 보고 싸다고 해서 (프리마켓에) 왔는데 생각해보니 그(저렴한) 금액이 아닌거에요.

일반인들의 생각은 다이소에 금액이 맞춰져 있는게 있어서.

이걸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저희(작가들)도 고민이 많아요.

우리가 금액을 낮추자니 우린 공장이 아니라서 대량으로 뽑아낼 수 있는 게 아니고

오시는 분들이 알아주십사 하지만 그게 아직도 잘 안된다는 거.

제가 (프리마켓에) 참여한지 8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안 되는 거는 되게 힘들죠.

어떻게 바꿔야하나. 어떻게 인식개선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저는 그거에 대해서 소재가 재활용이다보니 더 심해요.

제가 마켓에서 펼쳐놓는 작품 중에 만원 넘는게 별로 없어요. 자꾸 가격을 신경 쓰다보니 높이지 못 하는데,

그마저도 ‘넌 재료 공짜로 구했잖아.’ 이런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게 느껴져요.

저는 돈을 주고 산 거는 아니지만 받아서 세탁하고 손질하는 과정은 (구입하는 것과) 비등비등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쩌면 훨씬 더 공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아직은 가격까지는 미치질 못해서.

다들 마음의 여력이 안되니까 똑같은 가격에 새상품을 살 수 있으니까 저는 그게 최대 고민이에요.

처음에는 ‘이거를 왜 안 알아죠.’ 생각하며 화를 많이 냈는데,

생각해보면 안 알아 줄 수도 있는 거에요.

나는 내가 하니까 알지. 직접 하지 않는 이상은 모르는 거니까.

그러면 어떻게 유도를 해볼 수 있을까 인식을 바꾸게 됐죠. 화만 낼게 아니라.

 

○ 예술을 받아들이는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긴 해야하는 거 같아요.

작품을 만들어내는 분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지 이해하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기 보다는 저렴한 것을 사는게 좋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죠.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워크샵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초반에는 그랬어요. 이 과정을 체험을 해보시고 노트 하나 뭐 하나 나오기 위해 컵 받힘 하나 나오기 위해서 이런 고생이 들어가는 구나

알아주실 때가 있는데 그것도 약간 변질이 되어서 워크샵이 아이들만 하는 걸로 전락을 하고

그러다보니 단순화가 되기 시작하고 제가 워크샵을 개발할 초반에는 A~Z까지 구성품을 다 손을 대게 구성했었어요.

그러다보니 문제점이 시간이 길어지고 참여하는 분들이 그만큼 소수가 되어버리니까.

투자하는 만큼 결과물을 봐야하는데 그걸 못 보게 되는 것도 있었던 거죠.

저도 이제 단순화하게 되는게 있거든요.

근데 지금 워크샵이 행해지는 것을 저는 초반에 의도했던 것과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이 들면서 기피하게 되는 것도 있고,

예전처럼 노동을 즐기게 되는 그런 것을 했으면 좋겠는데,

이벤트로 전락한 게 많이 아쉬워요.

워크샵을 잘만 활용을 하면, 수공예로 직접 만드는 게 재밌으면서도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니까

이것을 만드는 사람이 이만한 가격을 받을 만 하겠다 생각을 해야하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체험하는 걸로 그치니까.(아쉽네요)

사실 아이들이 판매하는 것처럼 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어머니들은 판매하는 것처럼 만들기를 원하시죠. 그것도 아이들한테 부담이거든요.

저는 많은 오지랖이긴 한데, 미술선생님도 아니고.

아이들이 세모를 삐뚤삐뚤하게 그려도 되게 ‘개성 있는 세모다’ 말 해줄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거든요.

근데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노력을 많이 해야 되겠죠. 제 세대도 제 후 세대도 그렇고.

계속 이야기를 해야될 부분인 거 같아요.

답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서 더 힘든 거 같아요.

○ 작가님이 오랜 시간 참여해 주셨는데 지금은 안 나오지만 다시 보고 싶은 작가가 있나요?

– 일단은 회화하는 분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회화 작품이 어렵다는 건 알아요.

소품은 많이 가져올 수 있는데 작품은 많이 가져오기 힘들다 보니 회화하시는 분들을 (못 봐서) 많이 아쉽고.

스테인 글라스 하시는 분들도 저 나오기 훨씬 전에 책에서 봤던 분들인데

그렇게 실험적인 순수 예술이라고 칭하는 분들이 살짝 아쉽긴 해요.

그분들을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잘 모르겠어요.

‘오~멋있다’ 그러고 지나가는 것들이에요. 사실은 지갑이 열리는 작업물들이 아니라서.

그 분들이 처음에는 전시를 한다는 것에 뿌듯함을 많이 느꼈는데, 그게 오래 되다보니 주머니를 채워 가고 싶잖아요.

그래서 관람료를 받으시는 분들도 있었죠. 보고 버스킹 하는 분들이 팁박스를 놓는 것처럼.

보시고 좋아하는 분들은 팁을 넣어주세요(하는 방식으로). 그거 되게 획기적이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바로 옆에 계셨던 분이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큰 작품을 가져오면 좋은데 야외 전시라서 운반을 해야하다보니 훼손이 되는 게 있어요.

그래서 포기를 하게 되는 게 좀 있거든요.

그렇게 큼직큼직한 작품을 가져오는 분들 덕분에 더 예술시장으로 보이는 게 있었어요.

굳이 판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작업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까 괜찮은 거 같아요.

 

○ 처음에 되살림 예술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재활용을 예술로 살려보겠다 생각하신 이유는?

 – 저는 일러스트를 하고 싶었거든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 캔버스를 보면 손이 안 움직여져요. 되게 긴장을 많이 하게 되요.

캔버스나 종이를 망칠까봐 고민을 많이 하게 되요.

입체물은 손을 잘 대요. 옛날에 작업했던 거 중에 잘 했던 게 플라스틱 세재통을 잘라서 잡지 꽂이 만드는 작업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기존에 있던 사물을 가공하고, 그림을 그리기 좋게 만들어서 그림을 그리고 마감까지 하는 게 너무 재밌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되살림 미술이라고 딱 시작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다른 이유는) 돈 문제도 있어요. 캔버스를 사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웃음)

그러다보니까 이 쪽으로 가도 (괜찮겠다) 다들 그림은 흰종이에 많이 그리시니까 나는 좀 다르게 가봐야겠다.

이것으로 인해 지구도 살리면 좋을거야 라고 생각을 해서 하게 된 것도 있죠.

제가 시작할 때가 되살림 업사이클이 이슈로 주목 받기 시작할 때였어요.

리폼이라는 이름으로 에코 파티 메아리나 그런 기업체도 생기기 시작할 때라서 나는 좀 다르게 해보고 싶다.

정말 손으로 다 기계는 덜 사용하고 전기 덜 사용하고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점점 발전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만드는 방법을 올리기 시작했거든요.

작업물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이걸로 생계를 해보고 싶어라고 생각하면서 마켓에 참여하기 시작했죠.

 

○ 고등학교 때부터 작업을 시작하신건가요?

 – 마켓을 알게된 건 고등학교 책을 보고 알게된 거고 참여는 그림으로 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방향을 달리해서 되살림 예술로 나올 줄은 몰랐죠.

졸업 후에 회사 생활을 4개월 정도 했는데 그 때 컴퓨터로 계속 일을 했어요.

포토샵으로 계속 이미지를 손봐야 해서 너무 싫었어요.

원래 꿈은 만화가라 손으로 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손으로 그리는 작업을 해야겠어 하고 박차고 나와서

결국에는 꿈꾸던 만화가는 안되고 되살림 예술하는 사람이 되었죠.

 

○ 사회적인 분위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건가요?

 – 저도 제가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그 쪽(되살림 예술)에서 대니 서라는 분의 작품을 보고 업사이클 환경 운동가이기도 하고

책도 여러권 있고 그분이 하는 작업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나도 내가 하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시작을 하게 됐지만 나중에는 좋은 의미의 작업물을 하는 게 좋겠다.

생각을 해서 점점 굳혀 가게 된 게 있었죠.

 

○ 2008년도 첫 참가했을 때 현장에서 만났 던 첫 손님을 기억하시나요?

– 아마 홍대에서 가게를 하셨던 분인 거 같아요. 제 기억에는 그래요.

제가 그 때는 씨리얼(캘로그) 박스에 그림을 그려서 우편함을 판매하던 시절이라 그걸 사주셨던 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 때는 홍대 주변에 특이한 카페도 많았고 상점도 많았어요.

그 때는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작품이 특이하다고. 당시가 제 인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라고 여겼던게

개성 있고 특이한 걸 좋아하는 분들이 그 때가 제일 많았거든요.

저도 홍대 다니면서 재밌다고 생각했었던 시기가 그 쯤이에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는데, 코스튬 플레이 하면서 그 복장으로 다녀도 이상하게 보지 않을 시기라. 재미있었어요.

요즘 이쁘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카페나 레스토랑등의 공간들은 잘 다듬어진 공간들이에요.

(그 땐) 정말 개성이 강했죠. 락앤롤도 있었고 히피스러웠어요.

지금은 많이 단정하게 재단을 잘 해놓은 공간이죠.

길거리 지나가는데 세일러문 복장으로 다닌 사람도 있고 카드 캡터 체리 복장으로 다닌 분들도 있었죠.

그 때는 제가 제일 평범했죠.

○ 올 해 프리마켓을 나오시면서 목표나 결심이 있으실까요?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오고 싶다거나?

 –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오는 것도 맞아요. 다른 공간이 되게 어색했어요.

다른 공간(마켓)은 경쟁자들이다라고 생각하는 공간이라면

여기는 서로 챙겨주고 도와주고 그런 분위기가 아직은 남아 있어서 익숙한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도 맞고.

이제는 병행할 수 있는 것은 찾아볼 만큼 찾아본 것 같아서.

이제는 병행을 진짜 해봐야하는 실험적인 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원래는 좀 더 일찍 시작을 했어야 했는데.

늦어진 거는 있긴 하지만 어떻게 이 작업을 내 나이 60이 되어서도 할 수 있을까 병행을 하는 트레이닝을 하는 해라고 생각을 해요.

 

○ 가장 도움이 되거나 힘이 되는 가족이나 지인은?

– 힘이 되어주었던 분들은 많은데 일단은 계속 할 수 있게금 이끌어주는 건

표현해주시는 분들이 제일 좋고, 항상 같이 하면서 계속 모임을 갖는 작가분들이 제일 도움이 많이 돼요.

고민하고 있는 것들도 잘 이해를 해주고. 이거는 학교 동창 친구들도 공감을 못하는 이야기들이라.

친구들은 네가 좋아하는 거 하니까 되게 좋겠다. 거기서 끝나니까.

마켓에서 뵙고 친목을 쌓아가는 분들은

‘그게 고민이 되지.’ ‘나도 그게 고민이야.’ ‘이렇게 풀어보는 건 어때?’ ‘이렇게 좋은 소재도 있던데 이것도 한번 해봐’라고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마켓에서 뵙게 된 분들이 도움이 많이 돼요.

작가들이 갖는 고민은 가족이랑도 이야기 하기 어려운 부분인 거 같아요.

일반 회사랑은 달리 우리는 개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숨기지 않아도 되고 동료애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더 좋아요.

 

○ 마지막 질문으로 신규작가들이 프리마켓 나오면서 꼭 준비했으면 하는 것들이 있을까요?

 – 양산을 꼭 챙겼으면 좋겠어요. (웃음) 경계하는 마음을 내려두고 오시면 좋을 거 같아요.

○ 시민들이나 기존 작가들에게요?

 – 처음 나왔을 때 120cm 규격 안 에서만 하면 우리는 따로 (간섭)할 일이 없잖아요.

욕심이 나는 건 이해를 해요. 하지만 그것을 어기기 시작하면 개인적인 공간을 침범하는 거니까

날카롭게 나올 수 밖에 없는데 규칙만 지키면 우리(작가들)는 적대시할 이유가 없거든요.

처음에 나왔을 때 티티야작가님이 (프리마켓에 대해) 많이 알려주고 규격은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셨어요.

그거 때문에 지금까지 쭈욱 의지하고 지낼 수 있었어요.

 

초반에 많은 욕심을 내려놓고 소풍 오는 마음으로 오면 작가끼리 도움 받고 도움 줄 수 있어요.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주셨으면 좋을 거 같아요.


 가을비가 내리는 날 연남동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작가로서 작업을 계속 이어가며 느끼는 여러 고충과 고민들에 대해 진지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어려운 점이 있어도 작품을 좋아해주는 시민들과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작가들로 인해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길성신 작가님의 말 속에 프리마켓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다신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시 한번 일상예술창작센터까지 찾아와 인터뷰를 진행해주신 길성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